홍동백서 뜻, 그런데 문헌에는 없다고?

명절마다 차례상을 차릴 때 "붉은 과일은 오른쪽, 흰 과일은 왼쪽에 놓아야 한다"며 신경 쓰셨던 분들 많으실 텐데요. 이 규칙의 이름이 바로 '홍동백서'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규칙이 정식 유교 예법 문헌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홍동백서의 정확한 뜻과, 왜 근거 없는 규칙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정리했습니다.
차례상을 실제로 얼마나 간소하게 차려도 되는지 궁금하시다면 [차례상 간소하게 차리는 방법] 글도 함께 참고해보세요.
목차
- 홍동백서, 한자 뜻부터
- 함께 따라다니는 다른 규칙들
- 그런데 이 규칙, 문헌에는 없다
-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속담의 유래
- 그럼 언제부터 생긴 규칙일까
- 지역마다 제사 음식이 다른 이유
- 자주 묻는 질문
1. 홍동백서, 한자 뜻부터

📌 핵심 요약
-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을 홍, 동녘 동, 흰 백, 서녘 서 —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는 제사상 진설법
- 제사나 차례상에 음식을 차리는 방식을 '진설법'이라고 부름
- 복잡한 진설법 규칙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규칙
여기서 '동쪽'과 '서쪽'의 기준도 헷갈리기 쉬운데, 제사상에서는 지방(신위)이 있는 쪽을 북쪽으로 놓고 기준을 잡습니다. 신위를 기준으로 오른쪽이 동쪽, 왼쪽이 서쪽이 되는 방식입니다.
2. 함께 따라다니는 다른 규칙들

홍동백서와 세트로 언급되는 다른 진설법 용어들도 있습니다.
- 조율이시(棗栗梨柹) 또는 조율시이(棗栗柹梨): 대추, 밤, 배(또는 감), 감(또는 배) 순서로 과일을 배열한다는 규칙
- 좌포우혜(左脯右醯):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에 놓는다는 규칙
-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는 규칙
- 두동미서(頭東尾西): 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놓는다는 규칙
이런 규칙들이 마치 오래된 정통 예법인 것처럼 널리 퍼져 있지만, 다음 내용을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수 있습니다.
3. 그런데 이 규칙, 문헌에는 없다
여러 학술·전통문화 기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홍동백서를 비롯한 이런 진설법들은 정식 유교 예법 문헌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 조선 시대 제례의 기본이 된 문헌은 중국 남송의 성리학자 주희가 쓴 《주자가례(朱子家禮)》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제사상 차림 부분에는 과일의 구체적인 명칭이나 색깔, 위치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그냥 '果(과일 과)'라는 한 글자로만 표기돼 있습니다. 주석에는 "시과(時果)", 즉 그 계절에 나는 과일이면 된다고 적혀 있을 뿐입니다.
- 한국에서 이 주자가례를 풀어쓴 《사례편람》, 《사계전서》 같은 예법서에도 마찬가지로 과일의 구체적인 종류나 진설 위치는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 조선의 국가 예법을 담은 《국조오례의》나 유교 경전 《주례》**에도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표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 한국국학진흥원의 김미영 수석연구위원은 '제례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기획을 통해 "'홍동백서 조율이시'는 근거 없는 제사상 차림"이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 2023년 1월에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예법을 다룬 문헌에 홍동백서나 조율이시라는 표현은 없다"며 "명절 차례상에는 과일을 4~6가지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즉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이 규칙들은, 정통 예법이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져 굳어진 관습에 가깝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4.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속담의 유래
흥미롭게도 이런 진설법에서 유래한 속담도 있습니다.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표현,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이 속담은 바로 조율시이(대추·밤·감·배 순서로 과일을 배열한다는 진설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역설적이게도, 정작 그 기준이 되는 진설법 자체가 근거 없는 규칙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입니다.
5. 그럼 언제부터 생긴 규칙일까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이런 규칙이 생겨났는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홍동백서 등이 고문헌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풍습이 전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본 NHK의 '홍백가합전'처럼 붉은색과 흰색을 대립시켜 사용하는 것이 일본의 관습이라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 다만 이런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고 평가됩니다. 조선 후기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이미 허례허식이 늘어나면서 이런 표현들이 유림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정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 참고로 조선 초기 제사 진설도를 담은 《세종실록오례》에는 밤, 배, 잣, 산자, 은행, 강정, 약과, 호두, 사과, 홍시, 대추 등이 언급되는데, 이 역시 오늘날의 차례상과는 구성이 많이 다릅니다. 즉 시대에 따라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과 방식 자체가 계속 변화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6. 지역마다 제사 음식이 다른 이유

문헌에 구체적인 규정이 없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지역별로 다양한 제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 한국국학진흥원이 2017~2020년 전국 종가의 제례 음식을 조사한 결과, 과일과 채소류는 지역 간 큰 차이가 없었지만 어류에서는 뚜렷한 지역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 갯벌이 풍부한 전라도·충청도에서는 낙지, 꼬막, 홍어 등을 제사상에 올리는 반면, 경상도에서는 문어를 최고의 제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이런 현상은 주자가례를 비롯한 예서들이 제물의 구체적인 명칭을 정해두지 않은 탓에, 각 지역에서 나는 산물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제사상이 형성됐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7. 자주 묻는 질문
Q. 홍동백서를 안 지키면 예법에 어긋나는 건가요?
A. 아닙니다. 여러 전문 기관의 확인 결과, 홍동백서는 정식 유교 예법 문헌에 근거가 없는 규칙입니다. 지키지 않아도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Q. 그럼 과일은 아무렇게나 놓아도 되나요?
A. 네, 성균관 등 관련 기관도 "과일은 4~6가지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공식적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색깔별 위치를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Q. 조율이시, 어동육서 같은 규칙도 다 근거가 없나요?
A. 네, 홍동백서와 마찬가지로 조율이시·좌포우혜·어동육서 등도 주자가례를 비롯한 정통 예법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Q. 그럼 원래 주자가례에는 어떤 음식이 제시돼 있나요?
A. 주자가례에는 과일, 국, 국수, 고기, 구이, 생선, 떡, 육포, 나물, 육장, 김치 등 총 17가지 음식이 제시돼 있지만, 구체적인 종류나 재료, 진설 방법까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Q. 홍동백서가 일본에서 온 풍습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A. 그런 주장이 있지만 신빙성은 낮다고 평가됩니다. 조선 후기나 일제강점기 초기 이미 이런 표현이 유림 사이에 퍼져 있었던 정황이 있어, 단순히 일본에서 전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Q. 그럼 왜 이렇게 널리 퍼지고 당연하게 여겨졌을까요?
A.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며 허례허식이 더해지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마치 정통 예법인 것처럼 굳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동백서는 오랫동안 당연한 전통처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주자가례를 비롯한 정통 유교 예법 문헌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이번 명절에는 붉은 과일과 흰 과일의 위치를 고민하는 대신, 형편에 맞게 자유롭게 상을 차려보셔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퍼즐을 즐기고 뇌 건강도 챙기세요!!